포브스 CEO&People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 인터뷰 조회 118 2024-07-25



이주용 KCC 정보통신 회장은 한국 컴퓨터 산업의 1세대다. 정보통신 산업에서 수많은 한국 최초의 기록을 만들어온 그를 3월10일 KCC 정보통신 본사에서 만났다.

 

“소프트웨어를 한번 설명해 보세요.” 이주용 KCC 정보통신 회장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KCC 정보통신 본사에서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물어온 말이다. 답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애매했다.

“하드웨어는 쉬워요. 보이거든요. 중앙연산장치, 메모리, 메인보드가 한눈에 들어와요. 근데, 이 소프트웨어는 말로 설명이 어려워요.”

그는 같은 질문을 1960년대에 받았었다. 컴퓨터조차 생소한 단어이던 시절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그에게 담당 공무원, 기업인, 대학 교수들이 물었다. ‘도대체 소프트웨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아직도 당시를 아쉬워한다. 본인이 말주변이 없어 설명을 잘 못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제조 설비도 있어야 해서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소프트웨어는 똑똑한 머리와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60년대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해 왔으면 지금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을 이끌어 가는 국가로 자리했을 것이란 아쉬움이었다. 그는 “인도가 90년대 후반 시작했음에도 빠른 시기에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떠오른 것을 보라”며 “지금도 하드웨어의 발전은 소프트웨어가 이끌고 있기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한국 컴퓨터 산업의 1세대다. ‘컴퓨터 전산분야의 문익점’이라 불린다. 컴퓨터 한 대의 무게가 무려 35t이나 나가던 시절, 0과 1로만 된 기계어로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를 들여와 보급했고, 이를 운영할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내 주요 시설 전산화에 크게 기여했다. 프로그램을 해외에 수출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컴퓨터와의 인연은 미국 IBM에서 시작됐다. 그는 미시간주립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IBM에 입사했다. 그의 업무는 IBM의 첫 번째 컴퓨터인 IBM650을 다루는 일이었다. 당시 IBM은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던 정보통신(IT) 기업이었다. 뉴욕 본사에서 이 회장은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로 조직에서 인정받았다. 그는 IBM에 입사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뉴욕에서 자리 잡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고국에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 78달러 시절이다. 한국 GDP는 그가 일하던 IBM의 연매출보다도 적었다. “IBM에서 일하며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컴퓨터 언어가 빠르게 발전하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한국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